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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기업국가를 해체하라!

등록 : 2014.05.13 18:47수정 : 2014.05.14 09:40

 

"신자유주의 대한민국의 구호인 ‘기업하기 좋은 나라’대로, 사기업의 이윤은 국가의 유일무이한 목적이 됐다. 기업국가로의 전환이 쉽고 자연스러웠던 것은, 그만큼 한국 사회에서 기업가와 고위직 공무원들이 서로 가깝기 때문이기도 하다. 혼연일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노회찬 전 의원이 삼성으로부터 명절마다 천만원가량의 ‘떡값’을 챙겼던 검사 7명의 명단을 발표해도, 사법 처리 당한 게 검찰청의 ‘삼성 장학생’들이 아니고 바로 노회찬 의원 자신이었던 것은, 이 사회의 본질을 그대로 보여준다. 검·판사가 재벌의 사위가 되고, 퇴직한 공무원이 평소에 관련했던 업계로 내려가 한자리를 하는 사회에서는 ‘국가’와 ‘기업’은 이미 하나다."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정부가 해운업 감독 책임을 방기하고, 기업은 이윤을 위해 고객과 노동자 생명을 볼모로 잡는다면 이는 사고가 아니다. 살인이다. 삼풍과 세월호 참사는 구조적으로 거의 흡사하다. 삼풍 붕괴를 가능케 한 국가와 기업 사이의 관계 구도가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정부는 살인마다!” “아이를 살려내라!” 아이를 먼저 보내는 체험을 하지 않은 나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아픔으로 넘치는 유가족들의 이 외침 속에 이번 사태의 본질이 그대로 담겨 있다. 사이비 “언론인”들은 “교통사고” 따위를 들먹이지만, 해운업 감독의 책임이 있는 정부가 그 책임을 방기하고, 기업은 이윤을 위해 고객과 노동자의 생명을 볼모로 잡는다면 이는 사고가 아니다. 살인이다.

 

사고야 어디에서든지 일어날 수 있다. 내가 지금 사는 스칸디나비아에서도 1994년에 탈린과 스톡홀름 사이에서 운항했던 페리인 에스토니아호가 침몰돼 852명이 사망하는 20세기 최악의 선박사고가 났다. 그러나 왜 에스토니아호 희생자들의 유가족 중에서는 그 누구도 “정부는 살인마!”라고 부르지 않았던가? 에스토니아호를 소유했던 에스트라인이라는 회사는 공무원들과 결탁하여 상습적 과적 운항 등 각종 부정을 저지르지 않았으며 에스토니아와 핀란드, 스웨덴 해양구조 당국은 특혜 업체를 위해 초동대응을 늦추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에스토니아호 참사가 말 그대로 사고였다면, 이번 일은 궁극적으로 국가와 기업에 의한 간접적 대량살인으로밖에 볼 수 없다. 살인마라는 표현은 맞다.

 

군사독재 시절의 정부나 기업이 노동자 목숨을 초개처럼 여겼다. 박근혜가 자랑스러워하는 그 아버지 시절 ‘산업화’의 현장은 처참한 전장을 방불케 했다. 그 최대 국책사업인 경부고속도로를 보라. 위안부 피해자,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보상 권리를 팔아먹고 일본과 ‘관계 정상화’ 해서 얻은 차관과 베트남에서의 미국 침략의 현장에 한국 군인들을 팔다시피 하여 보내서 미국으로부터 받은 돈으로 1968~1970년 동안 했던 그 공사의 정치적 의미가 커서 정권은 계속 공기 단축을 재촉했다. 도로 공사에 익숙하지도 못한 노동자들이 최저가의 노후장비로, 휴일에도 쉬지 못하고 살인적 속도로 작업하다가 줄줄이 죽어나갔다. 경부고속도로 공사의 대가는 노동자 77명의 산재사와 수백명의 부상이었다. 이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물론 한 푼의 국가배상도 없었다. 단 시공사 차원에서 사망자 한명당 그 당시 돈으로 50만원, 즉 오늘날 돈으로 500만원 정도 주었다. 이는 “조국 근대화” 시절에 노동자 목숨의 값이었다. 이와 같은 사회적 타살의 구조는 지금까지 왜 그대로인가?

 

도살장 같은 이 국가는, 1987년 이후에 민주화됐다기보다는 기업에 의해서 사유화됐다. 관료집단이 기업을 관리하는 구조는, 기업이 상납 등을 통해서 관료들을 관리하면서 이용하는 구조로 바뀌었다. 기업의 목적이 오로지 이윤이다 보니 이러한 변화에 따른 것이 90년대 중반의 여러 대형참사였다. 502명의 목숨을 앗아간 1995년의 삼풍백화점 붕괴는 대표적이었다. 더 많은 이윤을 내려는 삼풍그룹이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먹여가면서 상가 건물을 무리하게 백화점으로 개조하고, 그 백화점의 매장 공간을 최대한 넓히려고 벽을 헐어버려 건물을 부실하게 만들고, 거기에다가 건물이 무너지려는 징조가 보여도 계속 영업 지속을 강행하자 얼마든지 살릴 수 있었던 수백명을 죽이고 말았다. 구조적으로 삼풍백화점 참사는 이번 참사와 거의 그대로 흡사하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삼풍백화점 붕괴를 가능하게 한 국가와 기업 사이의 관계 구도가 그동안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달라진 게 있다면 1997~98년 환란을 계기로 국가는 더욱 기업국가 방향으로 변모돼간 것이었다. 신자유주의 대한민국의 구호인 ‘기업하기 좋은 나라’대로, 사기업의 이윤은 국가의 유일무이한 목적이 됐다. 기업국가로의 전환이 쉽고 자연스러웠던 것은, 그만큼 한국 사회에서 기업가와 고위직 공무원들이 서로 가깝기 때문이기도 하다. 혼연일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노회찬 전 의원이 삼성으로부터 명절마다 천만원가량의 ‘떡값’을 챙겼던 검사 7명의 명단을 발표해도, 사법 처리 당한 게 검찰청의 ‘삼성 장학생’들이 아니고 바로 노회찬 의원 자신이었던 것은, 이 사회의 본질을 그대로 보여준다. 검·판사가 재벌의 사위가 되고, 퇴직한 공무원이 평소에 관련했던 업계로 내려가 한자리를 하는 사회에서는 ‘국가’와 ‘기업’은 이미 하나다.

 

국가의 총력이 사기업의 이윤 창출에 동원되는 기업국가, 기업사회로서의 한국은 1997~98년 이후 승승장구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구난 현장에서야 국가는 턱없이 부실해도 국가와 하나가 된 주요 재벌들의 이윤실적들은 계속해서 세계 재계의 부러움을 사왔다. 최근 몇년간 세계공황 등으로 기업매출증가율이 연간 2%에 그치고 수익성은 악화돼도 한국을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대기업 대주주들의 배당금은 전혀 줄어들지 않는다. 예컨대 삼성의 이건희는 삼성전자, 삼성생명, 삼성물산 등으로부터 2011년 1091억원, 2012년 1034억원, 지난해 1079억원 등 불황 속에서도 어마어마한 배당금을 받아왔다. 10대 그룹 대주주 10명이 상장계열사로부터 받은 배당금은 최근 4년 동안 약 1조원이나 되는데, 대한민국 전체의 1년간 실업급여 예산은 3조8600억원 정도밖에 안 된다. 즉 약 70만명 이상이 되는 공식 실업자들이 받을 돈의 약 30%에 해당되는 금액을, 최고 부자 10명이 개인적으로 챙겨가는 셈이다. 이런 현대판 귀족사회에서 과연 국가가 서민의 목숨에 무슨 가치라도 부여하겠는가?

기업국가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공공성의 부재다. 기업국가에서는 공공기관이 챙겨주어야 할 서로 평등한 민주시민은 없다. 그저 기업으로서 필요한 인간부품들이 있는가 하면, 필요가 없어져 폐기처분되는 폐품들이 있다. 이번 참사의 피해자 같은 아이라면 아직 “쓸만한 부품”이 되지 못하지만, 더 이상 기업으로서 이용가치가 없는 노인들 같으면 바로 폐품으로 취급받는다. 한국에서 특권층·중상층이 아닌 이상 노인으로 산다는 것은 ‘처벌’에 가깝다.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거의 49%로 산업화된 국가 중에서는 최악이고, 프랑스(5%)나 독일(10%)은 물론 미국(14%)과도 비교조차 하기 어렵다. 그리고 그 빈곤율은 산업화된 국가 중에서는 가장 빠른 속도로 악화돼간다. 이명박 정권 초기에 44%였는데 이제는 노인들의 거의 절반이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국민연금이 극도로 부실한데다가 기업들이 나이 든 사원들을 너무나 쉽게, 국가의 어떤 제재도 없이 퇴출시키는 게 원인 중의 하나다. 2007년에 명예퇴직과 해고를 당한 노동자들이 65만명이었다면 작년에는 87만명이 됐다. 일회용 제품처럼 쓰였다가 버려지는 노동자는 빈곤노인이 되고, 가면 갈수록 삶이 빡빡해지고 각개약진, 각자가 그 생존의 길을 알아서 가는 게 일상화된 사회에서는 그의 가족들도 그를 외면하게 된다. 가난과 고독에 시달리는 수많은 노인들에게 자살만이 유일한 탈출로 보인다. 2000년에 10만명당 34명이었던 65살 이상 한국 노인의 자살률이 이제는 80명, 즉 세계 최악이다. 유럽에서는 노인자살률이 내려가고 있는 중이지만, 한국에서는 정반대이며 중국이나 싱가포르 등 다른 아시아 국가와 달리 별다른 대책도 없다. 알아서 죽으라는 것이다. 저질 기업국가 아니면 이런 죽음의 행렬이 가능하겠는가?

 

기업국가 해체만이 우리 모두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다. 기업 본위의 사회를 인간 본위, 노동자 본위의 사회로 바꾸는 일에 다들 함께 착수하고, 기업국가 해체를 위하여 다 같이 반란자가 되지 않으면, 구명보트를 탈 만큼의 특권층이 아닌 대한민국호 승객의 대다수를 기다리는 것은 수장일 뿐이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노인들과 함께 기업국가의 또 다른 커다란 피해자층은 바로 이번 참사 속에서 희생된 아이들과 같은 또래의 청소년, 청년들이다. 한국만큼 아이들이 불행하게 사는 나라는 없다. 기업들의 ‘쓸만한 부품’으로 가공돼야 할 그들은 살인적 경쟁에 휘말리면서 심신의 황폐화를 일찌감치 당한다. 한국 청소년 사망 원인 1위는 자살이다. 절반 이상이 가끔가다가 자살 충동을 느끼고, 3분의 1은 간헐적으로나마 우울증을 경험한다. 그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늘 명하는 기업국가는, 그들에게 그 어떤 미래도 보장해주지 않는다.

기업국가 해체만이 우리 모두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다. 기업 본위의 사회를 인간 본위, 노동자 본위의 사회로 바꾸는 일에 다들 함께 착수하고, 기업국가 해체를 위하여 다 같이 반란자가 되지 않으면, 구명보트를 탈 만큼의 특권층이 아닌 대한민국호 승객의 대다수를 기다리는 것은 수장일 뿐이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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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omychans)

20대 국회의원(창원시 성산구) 정의당 원내대표 진보 정치 최초 3선 의원 &국민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