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서적은 재미없다? 노회찬이 하면 다르다

 

[서평] 기자 구영식이 묻고 진보 정치인 노회찬이 말하는 289쪽의 유쾌한 대담집

 

15.01.08 13:36l 최종 업데이트 15.01.08 13:36l   상만(rights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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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28일 당시 노회찬 동작을 야권단일 후보가서울 동작구 이수역 인근에서 유세를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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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4월 15일. 당시 나는 경기도 안산의 한 허름한 술집에서 텔레비전을 응시하고 있었다. 시각은 이미 자정이 넘었지만 나말고도 꽤 많은 사람들이 흥미롭게 그 결과를 지켜보며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돌이켜 보면 그 날은 대한민국 정당사에 큰 획을 남긴 날이었다. 바로 17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있던 날이었고 대한민국 사상 최초로 진보 정당이 국회의원을 배출한 첫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자 개표기가 처음으로 도입된 이날 선거에서 대부분의 당선자는 이른 시간에 윤곽이 드러났지만 당선자 한 명을 놓고 예측 불허의 반전을 거듭됐다. 비례대표 한 석을 놓고 벌어진 반전이었다. 관건은 당시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의 비례대표 1번이었던 김종필 후보와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8번으로 나선 노회찬 후보 중 누가 당선되냐였다.

'무명' 노회찬, '거물' 김종필을 물리치다

텔레비전에서는 그야말로 초 단위로 당선자 이름이 바뀌었다. 새로운 개표 결과가 나올 때마다 한 번은 자민련 김종필 후보가, 그 다음엔 민주노동당 노회찬 후보가 당선자로 자막이 나왔다. 특히 김종필 입장에서 당시 선거는 명예가 걸린 매우 절박한 일이었다. 이유는 크게 2가지였다.

첫 번째는 '개인적 명예'였다. 영원한 권력 2인자로 불리던 김종필은 끝내 대통령을 하지 못했다. 박정희 시대 한 번, 그리고 다시 김대중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하는 등 화려한 권력을 누린 김종필이지만 1인자 자리에는 서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영원한 2인자로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김종필은 마지막으로 히든 카드를 뽑았다. 바로 국회의원 최다선으로 역사에 기록을 남기겠다는 욕심이었다.

김종필은 2004년 총선에서 "서산 앞바다를 붉게 물들이겠다"는 말과 함께 자민련 비례대표 1번으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반드시 10선 고지에 깃발을 꽂겠다는 강력한 의지였다. 만약 그가 당선된다면 대한민국 정치 역사상 최초로 10선 국회의원으로 등극해 대통령을 못한 한을 풀 수 있었다. 참고로 당시 우리나라의 최다선 국회의원은 9선으로, 공동 1위는 김영삼 전 대통령과 박준규 전 국회의장이었다.

하지만 그런 영광은 김종필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제17대 총선 비례대표 최종 당선자는 일반 국민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노회찬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8번에게 돌아갔다. 그 순간 희비가 엇갈렸다. 선거가 치러지고 4일이 지난 4월 19일, 김종필은 정계은퇴를 선언한다. "잠들기 전에 가야 할 길이 남아있다"느니 "서산 앞바다를 붉게 물들이겠다"던 그의 화려한 공언이 서산 앞바다에 침몰한 것이다.

반면 거물 김종필을 물리친 노회찬 당선자는 새로운 시대를 화려하게 연 걸출한 인물로 국민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이후 '노회찬'은 타고난 입담을 무기로 위트 넘치는 정치인으로 자리 잡는다. 할 말은 다 하면서도 과격하지 않고, 날카롭지만 위험해 보이지 않는 청렴한 정치인, 그것이 노회찬이라는 정치인의 이미지였다. 노회찬의 장점은 자신에게 온 기회를 더 크고 풍성하게 만들었다. 그야말로 타고난 정치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노회찬의 인생, 생각, 그리고 진보정치

하지만 2004년 국회의원 당선 이후 10년 세월이 흐른 지금, 정치인 노회찬의 길을 한마디로 정리하며 '화려한 가시덤불을 지나왔다'고 할 수 있다. '토론의 달인'답게 수많은 명언을 만들어내며 국민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지만 또 한편으로는 '출마와 낙선의 달인'이라는 이미지도 남았다. 17대와 19대 총선에서 두 번 당선되었지만 2008년 총선과 2010년 서울시장 선거, 그리고 2014년 동작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서 각각 낙선했다. 그래서 결과는 5전 2승 3패.

생각해 보면 정치인으로서 그리 많은 출마도 아니고 낙선만 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출마와 낙선의 달인'이라는 이미지가 생겨났을까. 2008년 이래 짧은 6년 동안 무려 4번이나 출마했고 그 결과가 대부분 낙선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가장 최근인 지난 2014년 7월 요란한 과정을 거치며 '야권단일 후보'로 출마한 서울 동작 재보궐 선거에서 다시 패배하면서 정치인 노회찬의 입지는 상당한 상처를 받았다. 이제 그가 무엇을 어찌할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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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 정치기자 구영식이 묻고 정치인 노회찬이 답한 인터뷰 책. 노회찬 특유의 위트와 유머로 책을 읽는 내내 지루하지 않았다. 정치인 관련 책으로서는 보기 드문 경우다.
ⓒ 비아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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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런 와중에 2014년 12월 19일 헌법재판소는 민주노동당의 후신이면서 진보정당 1세대인 통합진보당을 종북 혐의로 정당 해산 시키고 소속 국회의원 전부에게 그 직위를 상실케 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야말로 진보정당의 크나큰 위기가 도래했다.

이럴 때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거쳐 진보정당 운동으로 나아간 첫 세대인 노회찬 전 의원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진보 정치는 과연 다시 이어갈 수 있을까. 그래서 읽게 된 '노회찬, 직심하고 말하다'라는 부제로 발간된 책 <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비아북)에는 그러한 궁금함을 충실히 담고 있었다.

월간 <사회평론 길>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한 공동저자 구영식은 현재 <오마이뉴스> 정치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동안 '밀리언셀러 [마시멜로 이야기] 대리 번역 의혹' 기사를 비롯해 '육사 출신 현역 대위의 MB 모욕죄 기소' 등의 특종 보도를 통해 여러 기자상을 받은 저명한 저널리스트다. 특히 그동안 사회적 인물을 상대로 한 인터뷰 책을 다수 펴냈는데 이번에 그가 선택한 인물이 '진보 정치인' 노회찬이었다. 289쪽의 책에는 노회찬이 지금까지 걸어온 진보 정치의 길과 앞으로 걸어갈 길이 담겨 있었다.

책 한권에 담긴 노회찬의 세가지 이야기

이 책을 내기 위해 '인터뷰어' 구영식이 '인터뷰이' 노회찬을 인터뷰한 기간은 무려 1년여. 이 긴 시간 동안 구영식이 노회찬에게 물은 질문은 그야말로 경계도, 영역도, 금지어도 없었다. 그래서 이 책은 참으로 다양한 느낌을 담고 있었다.

시작은 '인간' 노회찬의 자서전 같았다. 그가 지금까지 살아온 역사를 담고 있었다. 그러면서 애초 의도인 진보 정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노회찬 특유의 어렵지 않은 화법으로 풀어 놓고 있다. 중간 중간에 진보 정당의 핵심 논란 중 하나인 북한에 대한 인식과 개인적 에피소드도 눈길을 끈다. 특히 이산가족이라는 개인사를 담아 바라보는 북에 대한 평가는 새로웠다.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진보정치 운동가 첫 세대인 노회찬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무엇보다 이 책이 흥미로운 것은 '명언 제조기'라는 별명을 가진 노회찬답게 내내 간결하면서 코믹한 비유가 책 곳곳에 적절히 버무려져 있다는 점이다. 단언컨대, 정치에 관심 없는 누구라도 이 책만큼은 쉽게 읽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든다. 노회찬의 명언은 때만 되면 회자될 정도로 유명하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에서 법은 만인이 아니라 만명에게만 평등하다'라든가 '50년 동안 한 판에서 삼겹살 구워 먹으면 새까매진다. 이제 불판을 갈 때가 되었다'는 식의 노회찬 명언이 그렇다.

그중 내가 생각하는 가장 압권은, 2012년 총선을 앞두고 당시 SBS에서 열린 토론 방송에서의 노회찬 발언이었다. 당시 새누리당 소속 토론자가 "야권연대면 당을 통합하던가 하지 같은 당도 아니면서 왜 하나인 것처럼 행동하냐"며 당시 야권 연대를 강하게 비판했다. 듣는 사람도, 말하는 사람도, 답변할 사람도 당황할 만큼 강한 어조로 공박한 것이다. 하지만 노회찬의 답변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우리나라랑 일본이랑 사이가 안 좋아도 만약 외계인이 침공하면 같이 힘을 합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책에는 이러한 노회찬 특유의 풍자와 유머가 가득했다. 그러면서 은유적 비유로 부드럽지만 그 안에 담긴 날카로움을 느낄 수 있다. 터무니없는 색깔 공세를 타파하고 진보정치의 새로운 희망을 말할 때 더욱 그러했다. 그렇다면 이 인터뷰 책을 통해 노회찬이 국민에게, 독자에게 하고 싶었던 결론은 무엇일까?

그는 "진보의 미래를 낙관한다"고 말했다. 크게 두가지 이유가 있다며 하나는 '이 사회가 점점 더 진보를 필요로 하는 사회로 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때로는 길을 잃어 방황하고 우를 범하거나 실책을 하기도 하지만 진보는 결국 그러한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고유의 특성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첫 번째 '희망의 근거'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노회찬이 말하는 '그래도 진보의 희망' 한 가지는 또 뭘까? 그것은 독자 여러분이 이 책을 읽고 직접 찾는 숙제로 남기겠다. 진보 정치를 갈망하는 사람이든 아니든, 그래도 세상이 지금보다는 더 나아지기를 염원하는 사람이라면 이 정도 노력은 같이 해야 하지 않겠나.

장담할 수 있는 것은 구영식이 묻고 노회찬이 답한 이 책 <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는 결코 재미없는 책이 아니라는 점. 책을 다 읽고 난 후 당신은 분명 책 여행이 즐거웠다고 말할 것이다. 자신 있다.

 


덧붙이는 글 | <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 노회찬 답하다 구영식 묻다/ 비아북/ 1만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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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omychans)

20대 국회의원(창원시 성산구) 정의당 원내대표 진보 정치 최초 3선 의원 &국민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