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의 난중일기]

 

2014. 4. 30(수)

 

백성을 버린 선조와 배신당한 백성들이 불태운 궁궐..지금 민심과 크게 다르지 않아..

  

 

 

“수백명의 죽음을 값진 희생으로 승화시키는 유일한 길은 다시는 이런 참사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는 재발방지대책을 세우는 일이다. 민,관,여,야를 넘어서는 범국민대책기구를 구성하여 원인을 규명하고 모든 시스템을 점검하고, 법률적 뒷받침을 완성해야한다.”

 

 

 

1592년 4월 30일 새벽 선조는 서울을 버리고 임진강으로 향했다. 그러나 서울의 사대문은 굳게 닫혔으며 백성들이 피난가는 것은 금지되었다. 약탈과 방화가 잇따랐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불태운 것으로 알려진 경복궁은 사실 배신당한 조선 백성들이 불태운 것이었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세 궁궐이 일시에 모두 타버렸다. (노회찬과 함께 읽는 조선왕조실록 p.167)

 

422년 전 오늘의 일이다. 지금의 민심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민의 세금으로 권력을 행사해 온 모든 사람들이 이 사태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가장 두려운 것은 대통령이 몇번 더 사과하고 총리 자르고 장관 몇 교체하고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타격받는 등 정치적 응징으로 끝나고 그리고 몇달 후 모든 것은 잊혀지고 다시 4월16일 전과 같은 일상으로 이 사회가 돌아가는 것이다.

 

이제까지 늘 그래왔다. 소 잃고 외양간 안고치고 다시 소잃고 그래도 외양간 제대로 안고치고. 그래서 이번 사고도 발생한 것 아닌가. 그 어린 학생들을 포함한 수백명의 죽음을 값진 희생으로 승화시키는 유일한 길은 다시는 이런 참사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는 재발방지대책을 세우는 일 뿐이다.

 

이 일을 정부에만 맡길 수 없다. 공허한 다짐과 즉흥적인 개선책으로 해결될 수 없다. 시간과 돈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 민,관,여,야를 넘어서는 범국민대책기구를 구성하여 일년이 걸리든 이년이 걸리든 원인을 규명하고 모든 시스템을 점검하고 대책까지 수립해야 한다. 이를 국회에 제안하고 국회가 검토, 채택하면서 예산배정과 법률적 뒷받침을 완성해야 한다. 이 비극이 더 안전한 공동체를 만드는 밑거름이 될 때 영령들도 비로서 눈을 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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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국회의원(창원시 성산구) 정의당 원내대표 진보 정치 최초 3선 의원 &국민사이다

<난중일기> 삼성전자 기흥공장을 방문하다

 

11월 6일 (화) 사흘째 비, 서해바다엔 파랑주의보

 

오늘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기로 한 <대형유통업체의 불공정거래 실태확인 및 근절대책 청문회>는 무산되었다. 물론 신동빈 롯데그룹회장,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부회장 및 이마트대표,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 등 4명의 증인이 불출석을 미리 통보해왔기 때문에 청문회 무산은 예상된 일이기도 했다.

 

사실 오늘의 청문회는 이 4명의 증인이 지난 11일의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채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불출석하고 그래서 23일 국감회의에 재출석을 요구했으나 다시 불출석해서 이번엔 그냥 넘어갈수 없다고 판단한 정무위원들이 청문회를 개최하며 다시 증인으로 이들을 부른 것이다.

 

이들이 내세우는 불출석 사유는 해외출장이다. 국정감사가 시작된 지난 10월부터 계속 해외에 체류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출석요구 받을 때마다 해외출장 일정이 잡히는 일종의 자동 동기화, 싱크로나이즈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헌법기관 위에 군림하고 있는 시장권력의 위세를 확인해주는 현상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다는 국회가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과 힘이 없어 보인다는 사실이다. 청문회를 다시 소집하자고하나 다시 불출석사유서를 제출할 것이 뻔하다. 그래서 ‘국회에서의 증언감청등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고발하자고들 한다. 여론과 국회의 질타도 우습다고 버틴 이들이 고발을 두려워할 것인가?

 

지난 1998년에서 2011년까지 13년 동안, 국회에서 증인으로 채택된 후 불출석하여 고발된 건수는 모두 211건이었다. 이 중 117건은 검찰에 의해 혐의없음으로 불기소처분 받고, 63건은 벌금형으로 약속기소 되었으며 23건만이 정식 재판으로 회부되었다. 그러니 누가 국회의 출석요구를 두려워하랴!

 

한국의 국회가 재벌그룹, 대자본 앞에 비참한 신세가 된 것은 헌법과 법률상의 권한이 작기 때문은 아니다. 국민이 국회에게 위임한 권력을 제대로 쓰지 않거나 잘못 써왔기 때문에 생긴 필연적 결과이다. 사실 이제까지 대한민국의 국회는 국민의 공복이라기보다 재벌의 시녀로서의 역할을 해 온 셈 아닌가? 재벌의 불법, 탈법행위를 감싸고, 특혜를 강화하는데 국회의 입법권, 예산심의권, 국정감사권이 오용, 남용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경제민주화란 재벌과 대자본을 헌법과 법률 아래 무릎꿇게 만드는 일이다. 헌법과 법률을 지켜야 헌법과 법률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는 일이다. 서방파, 양은이파만 조폭이 아니다. 자신의 힘으로 타인을 짓밟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탈법, 불법을 무시로 일삼는 모든 조직화된 폭력이 조폭이다. 지금처럼 조폭이 여전히 설치는 한 대한민국은 아직 민주공화국이 아니다. 그래서 조폭과 공존하지 않는 정권이 들어설 때만이 진정한 정권교체라 부를 수 있다.

 

심상정후보와 함께 삼성전자 기흥공장을 방문했다. 쌍용차, 현대차에 이은 세 번째 행보이다.

한 밤중에 트위터로 의견을 묻어오는 이가 있다.

“김지하 시인이 박근혜를 지지선언 했는데 노회찬 의원님이 김지하 시인님께 드리는 말씀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마지못해 답하고 만다.

“지하의 일을 지상의 제가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

가을비가 사흘째 내리는 밤,

'민주주의여 만세'라는 싯구절이 노래말이 되어 귓전을 떠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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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국회의원(창원시 성산구) 정의당 원내대표 진보 정치 최초 3선 의원 &국민사이다

11월 4일 (일) 흐리고 비

 

태권도대회, 등반대회, 족구대회, 소프트발리대회. 오늘은 네 곳. 매주 일요일 오전은 늘 비슷하다. 주된 활동일 순 없지만 안 갈 수 없다. 주민들과 만나고 소통하는 한 방법이라 생각하고 편안하게 참석한다.


표창과 축사가 기다리고 있다. 대개 주인들은 운동장이나 체육관 마루바닥에 심드렁하게 서있고 손님들은 맞은편 의자에 엄숙하게 앉아 있다. 간혹 참가자 수와 내빈 수가 같은 기괴한 장면도 연출된다. 행사가 길어질수록 서있는 주인들은 불편하다. 내가 드릴 수 있는 최대의 성의는 짧은 축사이다.

 

10초, 길어도 20초 이내에 축사를 끝낸다. 하기야 상품을 선전하고 제발 사달라고 애원하는 CM송의 길이가 19초 아니던가! 나는 주장한다. 축사가 1분을 넘기면 축하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지 의심받아야 마땅하다! 2008년 어느 공개행사에서 내가 ‘축하합니다’란 다섯글자로 축사하며 큰 박수를 받은 이래 노원구에선 축사 짧게 하기 경쟁이 일어났다. 당시 구 한나라당의 어떤 국회의원은 연설대로 가지도 앉고 앉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축하합니다’고 외친 적도 있었다.

 

수첩을 읽는 게 아니라면 정치인의 말은 짧을수록 미덕이다. 허나 생각해보면 일반인도 마찬가지다. 같은 뜻을 짧게 표현할 수 있다면 같은 시간에 더 많은 뜻을 전달할 수 있지 않은가? 여느 사람이라면 자신의 살아온 역정을 밤새워 얘기해도 시간이 모자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의 인생도 줄이고 또 줄이다보면 자신의 살아온 이야기를 3분 이내에 표현할 수 있다. 그것이 가능하냐고? 실험해보면 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쓴 뒤 그것을 계속 줄여보는 거다. 하다보면 마침내 3분 분량으로까지 줄일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진보정의당 창당과정에서 회의를 주재하면서 나는 말했다. 발언은 3분 이내로 해달라고. 살아온 과정도 3분이면 충분히 담을 수 있다고. 자신의 인생을 3분 이내에 표현할 수 없다면 그 인생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며 농담까지 하였다. 사실 3분이 넘으면 그건 ‘발언’이 아니라 ‘연설’이다. 그래서 일장연설(一場演說)도 영어로 번역하면 'long speech' 아닌가.

TV토론에서도 1회의 발언은 4-50초가 적당하다. 1분이 넘으면 시청자들에겐 지겨움을 주기 시작한다. 1분 30초면 시청자들은 인내심 테스트에 돌입하게 된다. 대통령선거 정책토론회에서 한 정책에 대해 설명할 때 주어지는 시간의 최대치는 1분 30초이다. 그 시간이면 CM송 4곡 부르고도 남는 시간이다!

 

그러고 보니 더욱 난감하다. 우리가 ‘하루’라고 부르는 시간은 CM송 4천3백4십7곡을 부르고도 남는 시간이거늘!

일요일 밤, 빗길을 달려 <저공비행-시즌2> 녹음을 시작했다. 시즌1을 시작할 때도 그랬다. 그냥 지나가는 말처럼 ‘할까요?’, ‘하죠!’ 이렇게 시작했다. 바쁘니까 녹음은 일요일 밤 늦은 시각으로 잡고. 사전에 어떤 기획회의나 콘티도 없이. 첫회 녹음 시각 30분 전에 만나 그날 할 얘기의 꼭지를 십분간 나누고, 만난 김에 전혀 다른 얘기를 한 20분 나누고 ’들어갑시다!‘ 오늘도 꼭 마찬가지다.

 

진중권교수가 고맙게 또 출연해주었다. 오랜만에 만난 진교수에게 안부를 묻지 않고 대뜸 변희재선생 안부를 걱정했다. 사실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가 왜 그리 불리할 뿐인 합의를 했는지?

 

지난 3월 중순, 예고도 없이 중단된 <저공비행>을 7개월만에 다시 시작했다. 서로에게 매우 힘들었을 그 7개월에 대해 우린 아무 얘기도 나누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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