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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4일 (일) 흐리고 비

 

태권도대회, 등반대회, 족구대회, 소프트발리대회. 오늘은 네 곳. 매주 일요일 오전은 늘 비슷하다. 주된 활동일 순 없지만 안 갈 수 없다. 주민들과 만나고 소통하는 한 방법이라 생각하고 편안하게 참석한다.


표창과 축사가 기다리고 있다. 대개 주인들은 운동장이나 체육관 마루바닥에 심드렁하게 서있고 손님들은 맞은편 의자에 엄숙하게 앉아 있다. 간혹 참가자 수와 내빈 수가 같은 기괴한 장면도 연출된다. 행사가 길어질수록 서있는 주인들은 불편하다. 내가 드릴 수 있는 최대의 성의는 짧은 축사이다.

 

10초, 길어도 20초 이내에 축사를 끝낸다. 하기야 상품을 선전하고 제발 사달라고 애원하는 CM송의 길이가 19초 아니던가! 나는 주장한다. 축사가 1분을 넘기면 축하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지 의심받아야 마땅하다! 2008년 어느 공개행사에서 내가 ‘축하합니다’란 다섯글자로 축사하며 큰 박수를 받은 이래 노원구에선 축사 짧게 하기 경쟁이 일어났다. 당시 구 한나라당의 어떤 국회의원은 연설대로 가지도 앉고 앉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축하합니다’고 외친 적도 있었다.

 

수첩을 읽는 게 아니라면 정치인의 말은 짧을수록 미덕이다. 허나 생각해보면 일반인도 마찬가지다. 같은 뜻을 짧게 표현할 수 있다면 같은 시간에 더 많은 뜻을 전달할 수 있지 않은가? 여느 사람이라면 자신의 살아온 역정을 밤새워 얘기해도 시간이 모자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의 인생도 줄이고 또 줄이다보면 자신의 살아온 이야기를 3분 이내에 표현할 수 있다. 그것이 가능하냐고? 실험해보면 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쓴 뒤 그것을 계속 줄여보는 거다. 하다보면 마침내 3분 분량으로까지 줄일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진보정의당 창당과정에서 회의를 주재하면서 나는 말했다. 발언은 3분 이내로 해달라고. 살아온 과정도 3분이면 충분히 담을 수 있다고. 자신의 인생을 3분 이내에 표현할 수 없다면 그 인생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며 농담까지 하였다. 사실 3분이 넘으면 그건 ‘발언’이 아니라 ‘연설’이다. 그래서 일장연설(一場演說)도 영어로 번역하면 'long speech' 아닌가.

TV토론에서도 1회의 발언은 4-50초가 적당하다. 1분이 넘으면 시청자들에겐 지겨움을 주기 시작한다. 1분 30초면 시청자들은 인내심 테스트에 돌입하게 된다. 대통령선거 정책토론회에서 한 정책에 대해 설명할 때 주어지는 시간의 최대치는 1분 30초이다. 그 시간이면 CM송 4곡 부르고도 남는 시간이다!

 

그러고 보니 더욱 난감하다. 우리가 ‘하루’라고 부르는 시간은 CM송 4천3백4십7곡을 부르고도 남는 시간이거늘!

일요일 밤, 빗길을 달려 <저공비행-시즌2> 녹음을 시작했다. 시즌1을 시작할 때도 그랬다. 그냥 지나가는 말처럼 ‘할까요?’, ‘하죠!’ 이렇게 시작했다. 바쁘니까 녹음은 일요일 밤 늦은 시각으로 잡고. 사전에 어떤 기획회의나 콘티도 없이. 첫회 녹음 시각 30분 전에 만나 그날 할 얘기의 꼭지를 십분간 나누고, 만난 김에 전혀 다른 얘기를 한 20분 나누고 ’들어갑시다!‘ 오늘도 꼭 마찬가지다.

 

진중권교수가 고맙게 또 출연해주었다. 오랜만에 만난 진교수에게 안부를 묻지 않고 대뜸 변희재선생 안부를 걱정했다. 사실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가 왜 그리 불리할 뿐인 합의를 했는지?

 

지난 3월 중순, 예고도 없이 중단된 <저공비행>을 7개월만에 다시 시작했다. 서로에게 매우 힘들었을 그 7개월에 대해 우린 아무 얘기도 나누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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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omychans)

20대 국회의원(창원시 성산구) 정의당 원내대표 진보 정치 최초 3선 의원 &국민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