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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21일(일) 맑음

 

오후 1시 진보정의당 창당대회가 열렸다.

오전에 노원구 체육행사 여섯 곳에 들러 축사를 한 후 바삐 움직였다.

 

권영길, 천영세, 이수호, 강기갑. 지난 시기 진보정당을 이끌었던 분들도 참석하셨다.

 

1992년 진보정당추진위원회 대표를 맡으면서부터 시작하여 1997년 국민승리21, 2000년 민주노동당, 2008년 진보신당, 2011년 통합진보당 창당을 거쳐온 20년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내빈 한분이 축사에서 ‘격려하러 왔는데 격려받고 간다’고 말씀하실 정도로 창당대회의 열기가 뜨거웠다. 대회 후 중앙당 상근자들과의 뒷풀이 자리에서도 다들 고생한 보람을 확인한듯 오늘 행사의 성과에 고무되어 늦게까지 막걸리 잔을 돌렸다.

 

대회사에 이어 당대표 수락연설까지 두 번의 연설을 하는 날이라 두 번째 연설은 원고 없이 즉흥연설을 하였다. 오랫동안 가슴에 담아 온 ‘새벽 첫차를 타는 우리의 이웃, 투명인간들’에 관한 얘기로 시작하였다.

 

 

<당대표 수락연설>

 

6411번 버스라고 있습니다.

 

서울 구로구 거리공원에서 출발해서 강남을 거쳐 개포동 주공 1단지까지 대략 2시간 정도 걸리는 노선버스입니다. 내일 아침에도 이 버스는 새벽 4시 정각에 출발합니다. 새벽 4시에 출발하는 그 버스와 4시 5분경에 출발하는 두 번째 버스는 출발한지 15분 만에 신도림과 구로시장을 거칠 때쯤이면 좌석은 만석이 되고 버스 안 복도까지 사람들이 한명 한명 바닥에 다 앉는 진풍경이 매일 벌어집니다.

 

새로운 사람이 타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매일 같은 사람들이 탑니다. 그래서 시내버스인데도 마치 고정석이 있는 것처럼 어느 정류소에서 누가 타고 강남 어느 정류소에서 누가 내리는지 거의 다 알고 있는 매우 특이한 버스입니다. 이 버스 타시는 분들은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새벽 5시 반이면 직장인 강남의 빌딩에 출근해야하는 분들입니다. 지하철이 다니지 않는 시각이기 때문에 매일 이 버스를 탑니다. 한명이 어쩌다 결근을 하면 누가 어디서 안탔는지 모두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좀 흘러서 아침 출근시간이 되고 낮에도 이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고 퇴근길에도 이용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 누구도 새벽 4시와 4시 5분에 출발하는 6411번 버스가 출발점부터 거의 만석이 되어 강남의 여러 정류장에서 5.60대 아주머니들을 다 내려준 후에 종점으로 향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분들이 아침에 출근하는 직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들,딸과 같은 수많은 직장인들이 그 빌딩을 드나들지만, 그 빌딩이 새벽 5시 반에 출근하는 아주머니들에 의해서 청소되고 정비되는 것을 의식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이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그냥 아주머니입니다. 그냥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입니다. 한 달에 85만원 받는 이분들이야말로 투명인간입니다. 존재하되 그 존재를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들입니다. 지금 현대자동차 그 고압선 철탑위에 올라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23명씩 죽어나간 쌍용자동차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용산에서 지금은 몇 년째 허허벌판으로 방치되고 있는 저 남일당 그 건물에서 사라져간 다섯 분도 다 투명인간입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이들은 아홉시 뉴스도 보지 못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분들입니다. 그래서 이 분들이 유시민을 모르고 심상정을 모르고 이 노회찬을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 분들의 삶이 고단하지 않았던 순간이 있었겠습니까? 이분들이 그 어려움 속에서 우리 같은 사람들을 찾을 때 우리는 어디 있었습니까? 그들 눈 앞에 있었습니까? 그들의 손이 닿는 곳에 있었습니까?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에 과연 있었습니까?

 

그 누구 탓도 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이 진보정의당은 대한민국을 실제로 움직여온 수많은 투명인간들을 위해 존재할 때만이 그 일말의 의의를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상 그동안 이런 분들에게 우리는 투명정당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정치한다고 목소리 높여 외쳐왔지만 이분들이 필요로 할 때 이분들의 손이 닿는 거리에 우리는 없었습니다. 존재했지만 보이지 않는 정당, 투명정당. 그것이 이제까지 대한민국 진보정당의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이제 이분들이 냄새 맡을 수 있고, 손에 잡을 수 있는 곳으로 이 당을 여러분과 함께 가져가고자 합니다. 여러분 준비되셨습니까?

 

강물은 아래로 흘러 갈수록 그 폭이 넓어집니다. 우리가 말하는 대중정당은 달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갈 때 실현될 것입니다. 진보정의당의 공동대표로 이 부족한 사람을 선출해주신데 대해서 무거운 마음으로 수락하고자 합니다. 저는 진보정의당이 존재하는 그 시간까지, 그리고 제가 대표를 맡고 있는 동안 저의 모든 것을 바쳐서 심상정 후보를 앞장세운 진보적 정권교체에 성공하고, 그리고 우리가 바라는 모든 투명인간들의 당으로 이 진보정의당을 세우는데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바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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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omychans)

20대 국회의원(창원시 성산구) 정의당 원내대표 진보 정치 최초 3선 의원 &국민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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